뭘 좀 먹어본 사람들의 입맛이란: 신맛을 아는 이들의 탐식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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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3-08-08
내용

신맛만큼 호불호가 나뉘는 맛이 있을까요?
일명 ‘인싸’로 불리는 식품에 신맛이 빠지지 않습니다. 
한쪽 눈 질끈 감고 먹으면서도 다시 찾게 되는 그 맛!  
신맛에 입덕한 당신, 미각의 마침표를 찍을지도 모릅니다.






신맛이 나야 고급이다?

커피




"신맛, 고소한 맛 원두 중에 어떤 것으로 하시겠어요?"


커피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커피 맛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카페도 많아졌어요. 커피는 본래 쓴맛, 단맛, 신맛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맛이 나는 음료지요. 커피 과실을 가공하여 만들기 때문에 보통의 열매처럼 단맛, 신맛 등이 포함되어 있고, 가공 과정에서 과일 향, 풀 향, 견과류 향 등이 혼합되어 천 가지 이상의 향미를 지닌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중 산미라고 부르는 신맛은 커피에 있어 중요한 향미로, 주로 구연산, 사과산 등의 물질에서 비롯되는데 레몬과 감귤계 과일의 구연산량이 많을수록 산미의 질이 좋아집니다.


커피는 일반적으로 고품질의 커피콩, 수준 높은 로스팅, 섬세하고 노련한 추출 방식 등으로 맛의 미묘한 차이를 갖게 됩니다. 요즘은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커피보다 새콤한 신맛이 나는 커피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졌어요. 커피 원두를 강하게 볶으면(강배전) 진하고 고소한 맛이 강해지고, 약하게 볶으면(약배전) 원두 속의 산뜻한 맛이 드러나면서 신맛이 강해지죠. 커피 생두에는 클로로겐산이라는 항산화 효과를 지닌 산 성분이 있는데, 오래 로스팅하면 파괴되어 신맛이 줄어들어요.


신맛은 커피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맛이지만, 신맛이 강한 커피를 선호하게 된 것은 고품질의 커피가 대중화된 것에서 연유를 찾을 수 있어요. 고품질의 커피 원두는 재배 지역, 가공 방식, 생산농장의 고유하고 특별한 풍미를 살리기 위해 로스팅을 약하게 하여 신맛이 도드라지죠. 그 때문에 산미가 풍부한 커피가 고급 커피의 기준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그러나 산미가 반드시 좋은 커피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두가 오래되어 산패했거나, 로스팅이 약해 생두가 설익었을 때, 일정 분량보다 과다 추출했을 때는 톡 쏘는 부정적인 느낌의 신맛이 납니다. 좋은 산미는 커피의 쓴맛과 단맛의 균형을 잡아주어 깊은 맛을 내지요. 특히 커피의 매력적인 신맛은 잘 익은 커피 열매의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맛으로 기분 좋은 느낌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적도 부근 고지대에서 자라거나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재배된 품종이 산미가 풍부합니다. 생두 가공과 로스팅, 추출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과테말라, 콜롬비아, 케냐, 코스타리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가 새콤달콤한 향기와 과일의 부드러운 신맛이 나요. 원두를 구매할 때는 포장지에 적힌 과일 맛, 견과류 맛 등 향미가 표기된 컵 노트를 확인하면 취향에 맞는 커피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시고 구수한 빵 전성시대

사워 도우 빵



오픈 런이 명품 숍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빵 덕후들에게 입소문 난 명품 빵집은 오픈 런이 필수지요. 베이커리 맛집들이 많아지면서 이곳들을 찾아다니는, 일명 ‘빵지순례’ 목록에 오르는 베이커리는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지 않으면 원하는 빵을 살 수 없어요. 그중 품절 대란 빵은 단연 사워 도우 빵(Sour Dough Bread)이에요. 건강하고 담백한 빵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천연 발효종을 이용한 사워 도우 빵은 명품 빵집의 시그니처 메뉴가 됐어요.


사워 도우 빵은 말 그대로 ‘신 반죽’으로 만든 빵입니다. 곡물가루와 물, 소금, 발효종으로 발효하여 특유의 풍미, 은은한 산미가 나는 것이 특징이죠. 특히 미생물이 천천히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큼함과 구수한 맛은 빵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워 도우 빵을 만들려면 먼저 사워 도우 스타터(첫 반죽, Starter)를 만들어야 해요.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발효시킨 반죽을 한 번에 다 굽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다음번 반죽을 만들 때 섞는 것으로, 이것을 ‘사워종’, ‘발효종’이라고 부릅니다. 대개 ‘천연발효 빵’, ‘천연효모 빵’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천연 발효종을 이용한 사워 도우 빵을 이릅니다. 또한 사워 도우 빵은 ‘탕종(湯種)’ 방식으로 발효시키기도 해요. 탕종법은 빵 반죽에 풀을 섞어 빵을 부드럽게 하는 방법으로, 밀가루를 따뜻한 물로 익반죽 후 발효시켜 빵 반죽에 섞습니다. 이렇게 구운 빵은 식감이 쫄깃하고 구수하며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지요.


사워 도우 빵은 본래 유럽 농가에서 식사 빵으로 먹어요. 보통은 흰 밀가루가 아닌, 정제하지 않은 통곡물을 이용하여 통밀빵, 호밀빵 등으로 만들죠. 사워 도우 빵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굽기도 하지만 치즈, 허브, 견과류 등을 넣어 맛과 향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큼직하게 구운 빵에 버터를 바르거나, 발사믹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린 올리브 오일에 찍어 담백하게 즐기는 것이 보통이에요. 요즘은 제과점은 물론 레스토랑에서도 직접 만든 사워 도우 빵을 식전 빵으로 올리고, 코스 메뉴로도 활용합니다.


사워 도우 빵은 인공 첨가물이 배제되고 품질 좋은 재료로 만들어져 영양소가 풍부합니다. 특히 발효와 저온 숙성으로 유산균이 많아져 장 내 미생물 환경에 좋은 영향을 줘요. 또한 일반 빵보다 GI(당) 지수가 낮아 혈당 걱정을 줄여주고, 글루텐 조직이 연화되어 먹었을 때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빵 맛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지요. 이번 여름휴가엔 베이커리 맛집을 찾아 빵지순례를 하는 건 어떨까요? 식도락 여행의 유쾌한 마무리가 될 겁니다!






새콤한 맛의 와인에 빠져든다

내추럴 와인



와인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알코올, 타닌, 산미, 당분입니다. 그중 산미는 와인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요소지요. 산미가 두드러지는 와인은 산뜻하고 생기가 넘칩니다. 일반적으로 와인을 삼킨 뒤에 그 맛이 입안에 얼마나 오래 남는가를 말할 때 ‘피니시’라는 용어를 써요. 피니시가 길수록 산미가 높고, 피니시가 짧을수록 산미가 낮습니다. 산미는 음식과 와인 페어링에도 영향을 줍니다. 기름기나 향이 풍부한 음식과 함께 마시면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을 무르익게 하여 음식의 맛을 북돋워 주기도 하지요.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은 화학비료와 농약,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고 자연 효모로 발효시켜 와인에 독특한 맛과 향을 부여하는 와인이에요. 지역의 토양과 미생물의 특성이 살아 있고 산미가 강한 것이 특징이지요. 대개 유기농으로 재배하여 ‘오가닉 와인’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와인은 산도가 높으면 인위적인 방식으로 산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여 질감과 풍미를 좋게 해요. 그러나 내추럴 와인의 경우 간섭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산도를 조절하지 않아서 좀 더 싱그러운 산미가 납니다. 다만 발효 상태에 따라 시큼하고 꼬릿한 맛이 나기도 하고, 흙 향이나 풀 향이 섞여서 호불호가 강한 편입니다. 그러나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이들은 자연의 생동감 있는 맛에 한 번 익숙해지면 신비한 와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해요. 처음엔 낯설지만, 독특한 산미와 함께 섬세한 감칠맛이 느껴지는 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추럴 와인을 고를 때 ‘오렌지 와인’과 ‘펫낫(Pet-Nat)’이라는 종류를 더 알아두면 좋아요. 오렌지 와인은 포도 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오랫동안 발효시켜 오렌지빛이 나는 와인으로 산미가 강하고 밝은 느낌이 들어요. ‘펫낫’은 탄산을 주입하지 않고 와인의 발효가 끝나기 전에 병입해 자연스러운 기포가 살아 있는 와인으로 상큼한 과실 향이 풍부해요. 오렌지 와인은 주스처럼, ‘펫낫’은 스파클링 와인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내추럴 와인은 음식의 향과 풍미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이어서 샐러드, 생선, 해산물 요리는 물론 육류 요리에도 두루 어울려 다양한 음식과 페어링을 시도해 볼 만합니다. 산도가 높아 갈증을 적당히 해소해 주고, 포만감을 누그러뜨리는 음료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특히 숙취가 적고 와인 초보자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입소문 덕분에 와인 판매 숍에서도 내추럴 와인의 종류를 계속 늘려가는 추세입니다.


내추럴 와인은 인증마크가 따로 없기 때문에 소믈리에나 와인 숍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아요. 구매하기 전 내추럴 와인 정보를 얻는다면 조금 더 내 취향에 맞는 내추럴 와인을 고를 수 있어요. 여름 와인 하면 청량한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렸다면, 올해는 내추럴 와인으로 와인의 또 다른 맛을 경험하는 건 어떠신가요?






시큼한 술맛에 취한 사람들

사워 맥주



사워 맥주(Sour Beer)는 효모와 미생물을 자연 발효시켜 6개월에서 3년가량의 긴 숙성 기간을 거쳐 신맛이 강해진 맥주입니다. 맥주의 산미는 정상적인 맥주 발효 과정에서는 부정적인 향취이지만, 사워 맥주는 산미를 의도적으로 이용해 맥주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요. 과일의 상큼한 향과 부드러운 산미가 청량한 느낌이 들어 여름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음료이며, 산미가 입맛을 깨워 주어 식전주로 좋고, 디저트에도 잘 어울려요.


사워 맥주는 벨기에식과 독일식이 대표적이에요. 벨기에식 람빅(Lambic)은 고대의 자연 발효 맥주 스타일로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신맛, 과일 맛, 쿰쿰한 맛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맥주입니다. 람빅은 연식이 다른 것들을 섞어 마시는데, 요구르트처럼 가벼운 시큼한 맛부터 식초와 같이 무거운 시큼한 맛까지 다양해요. 독일식 사워 맥주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는 알코올 도수가 2~3% 정도로 낮고 요구르트처럼 상큼한 신맛이 나 청량감이 좋은 맥주지요. 전통적인 발효법으로 만든 유럽의 사워 맥주는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보다 자유롭게 양조 되어 ‘아메리칸 와일드 에일’이라는 맥주 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사워 맥주가 더 다양화되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수제 맥주 시장이 커지면서 실험적인 맥주를 만드는 독립 양조장과 수제 맥주 전문점에서 사워 맥주를 즐길 수 있어요. ‘와일드 웨이브’의 ‘설레임’은 유산균과 맥주 효모로 발효시켜 상큼한 맛이 나고 화이트 와인과 같은 산미가 돋보여요. 특히 부산 기장 딸기와 황매실, 경남 포도, 제주도 금귤 등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특산물을 맥주 제조에 이용하여 깊은 홉 향과 과즙의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입니다. 사워 맥주 전문 펍 ‘사워 퐁당’과 수제 맥주 브랜드 ‘핸드앤몰트’, ‘생활맥주’ 등에서도 국내에서 양조된 사워 맥주와 수입 맥주를 맛볼 수 있어요.


국내 수제 맥주는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각종 품평대회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사워 맥주의 약진이 눈에 띕니다. 미국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수제 맥주 브랜드인 ‘도깨비어’의 ‘김치 사워’는 올해 세계 최대 수제 맥주 대회인 월드비어컵(World Beer Cup)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어요. ‘김치 사워’는 김치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사워 맥주로, 차별화된 맛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 중입니다. ‘오비 맥주’의 수제 맥주 브랜드 ‘구스 아일랜드’의 ‘라이프 이즈 비터스윗 사워’도 2022년 호주 세계 맥주 품평회(AIBA)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레몬과 생강, 벌꿀이 어우러져 산뜻하면서도 강렬한 풍미가 나는 사워 맥주지요. 한편, 경기도가 개발한 쌀 맥주 ‘미미사워’(美米SOUR)는 2022년 일본 국제 맥주 대회(IBC)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어요. 경기도 쌀 브랜드인 ‘참드림’을 이용하여 발효 때 생성되는 쌀의 산미의 특징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과일맥주들이 참신한 맛으로 소비자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올여름은 짜릿하게 입안을 휘감는 사워 맥주 한 잔으로 무더위를 식혀봅니다.




 윤지영 
참고                        『커피스터디』, 호리구치 토시히데, 황소자리, 2021.
『BEER DICTIONARY』, 리처드 크로스데일, 북커스, 2019.
『빅맥 & 버건디』, 바네사 프라이스, 청담숲, 2023.
『홈메이드 천연효모로 빵 만들기』, 데라모토 고로, 도림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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