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강순옥 명인: 햇볕, 물, 바람 그리고 진심이 빚은 깊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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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3-11-22
내용


전북 순창군 백산리에는 일 년 내내 고추장의 매콤하고도 구수한 향기가 전해옵니다.

전국의 고추장 장인들이 모여 저마다 특색 있는 고추장을 담는 고추장 민속 마을이 있기 때문이죠. 
순창 장류의 본가로서 순창 고추장의 명성과 전통을 이어 나가는
강순옥 명인의 진심이 담긴 고추장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순창의 건강한 자연을 담은 전통 고추장

‘순창’ 하면 고추장, ‘고추장’ 하면 순창이 떠오를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한 순창 고추장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스승인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순창에 위치한 만일사로 향하던 도중, 한 농가에 들러 맛본 고추장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 맛을 잊지 못해 훗날 왕이 되어서도 순창 고추장을 진상토록 했다는 이야기죠.


순창 지역은 섬진강의 맑은 물과 비옥한 농토를 끼고 있어 농산물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이에요. 이 같은 지리적 요건 덕분에 농사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고추의 주산지가 될 수 있었고, 발효와 숙성에 영향을 주는 일교차와 바람도 적어 고추장과 같은 장류 식품이 일찍부터 발달했습니다.


강순옥 명인의 ‘순창장본가’는 우리나라 장류 산업의 중심이 되는 순창, 그중에서도 전국의 내로라하는 장류 제조 기능인이 한데 모여 솜씨를 뽐내는 ‘순창 전통 고추장 민속 마을’에 자리하고 있어요. 순창 지역 고추장의 근본이 되겠다는 이름에 담긴 뜻처럼, 오직 고추장만을 바라보며 48년 세월 한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순창 고추장의 주재료는 고춧가루와 메줏가루, 찹쌀, 천일염, 조청으로 더할 나위 없이 간단하지만, 각 재료를 준비하고 배합하고 숙성하는 과정에서 맛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모든 재료는 순창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만을 사용하며, 더운 날씨로 인한 부패를 막고 숙성 표면적을 넓히기 위해 직육면체가 아닌 도넛 모양의 메주를 빚죠. 이후 식힌 찹쌀죽에 모든 재료를 넣고 섞은 뒤 항아리에 담아 숙성하는데 이때 각 재료를 어떤 비율로 배합하는지, 얼마나 적절하게 숙성시키는지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에요. 명인의 손길로 빚어지는 고추장은 고춧가루의 매큼한 맛과 누룩의 곰삭은 맛을 조화롭게 느낄 수 있어, 그냥 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고 반찬, 국, 찌개 등의 한식과 좋은 궁합을 이룹니다.




끊임없는 연구로 완성한 현대적인 전통의 맛

강순옥 명인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어머니가 장 담그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자랐어요. 이후 시어머니 밑에서 본격적으로 고추장 담그는 방법을 익혔고, 주변에서 하나둘 솜씨 좋은 고추장 맛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1976년부터 고추장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큰 기대를 안고 민속 마을에 들어왔지만, 연고도 없었던 탓에 처음부터 사업이 순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고추장 맛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고추장을 나눠주기 시작했고, 점차 맛있다고 소문이 나며 입지를 다져 나갔어요.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장류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 바로 정부 인증 사업! 1991년 장류 제조 기능인 인증을 시작으로 농식품부 전통 식품 품질인증, 식약처 식품 안전 관리인증(HACCP) 등을 거쳐 2015년에는 식품 분야 최고의 명인에게 부여되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식품명인이 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게감이 느껴졌죠.

명인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지식과 노하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돈을 벌기보다는 우리 전통 장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

명인은 전통 고추장 연구와 제품개발에 매진했어요. 소비자들이 집에서도 쉽고 간편하게 고추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분말 고추장 제조 키트’를 개발하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고추장 맛을 위해 재료를 변형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죠. 명인이 그간 출원한 특허만 해도 수십 개입니다. 판매 전시장 한 편에 빼곡히 걸린 중소기업 청장상, 농식품부 장관상, 대통령 표창장 등의 상장은 그간 명인의 노력을 증명해 줍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면 밤이건 새벽이건 주방 불을 켜고 연구를 시작한다는 명인. ‘최고가 되어야 하고,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의 집념 아래 진심으로 빚어지는 고추장은 어제보다 오늘, 더 맛있게 익어갑니다.




전통을 지키며 더욱 새로워지는 고추장

강순옥 명인의 하루는 언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갑니다. 명인을 찾는 후배들에게 고추장 제조 기술을 전수하고, 지역 명소와 연계해 방문객을 대상으로 고추장 만들기 시연도 진행하고 있어요. 몇 해 전부터는 농촌 융복합 산업의 일환으로 판매 전시장 내부에 체험 공간을 조성해 전통 고추장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에요. 명인이 직접 개발한 ‘고추장 만들기 키트’로 간편하게 고추장을 만들고 가져갈 수 있어 학생들의 체험학습이 많아졌습니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이 불며 외국인의 방문이 잦아요. 이곳 체험장을 찾는 방문객은 한 달에만 2천여 명 정도로, 순창 지역 발전과 교류에도 부단히 앞장서고 있습니다.


어느덧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명인의 마지막 바람은 전통 고추장의 맛과 가치를 후대에 고스란히 전하는 거예요. 자극적인 맛에 길든 요즘 사람들이 달콤함을 강조한 ‘공장 고추장’만을 찾게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요. 다행히도 막내아들 장승필 씨가 기능전수자가 되어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전통 고추장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고, 전통의 맛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대대손손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우리의 것, 전통의 가치를 지키기 쉽지 않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식문화는 세계가 가까워진 만큼 더 빨리 사라지고 자취를 감추지요. 그러나 진심을 담은 음식은 오랫동안 살아남아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요. 느릿하지만 성실하게 우리의 것을 지키는 명인의 고추장이 그러한 것처럼 말입니다.




순창 고추장 더 맛있게 즐기기


순창장본가에서 제조하는 전통 고추장은 되직한 편으로, 여러 농산물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어요.
강순옥 명인은 새콤한 맛의 사과를 갈아 넣어 ‘과일 고추장’을 만들기도 하고,
면역력 강화에 좋은 인삼을 넣어 ‘인삼 고추장’으로 먹기도 합니다.
순창장본가 전통 고추장은 방부제와 보존료를 첨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냉장 보관이 필요해요.
소고기와 갖은양념을 볶아서 볶음 고추장을 만들어 냉장하면 좀 더 오래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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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옥 명인의 순창 고추장 만들기




① 찹쌀죽 1kg을 만들어 식힌 후, 조청 300g을 넣고 섞는다.
② 메줏가루 400g과 소금(천일염) 300g을 섞어준 후 하루 동안 숙성시킨다.
    메주는 콩과 멥쌀을 6:4 비율로 삶은 후 도넛 모양으로 빚어 그늘에서 한 달 숙성한 것을 사용!
③ 고춧가루 1.2kg을 넣고 섞은 후, 항아리에 담아 6개월간 숙성시킨다.



 차주익 사진 박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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