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을 읽고 향으로 고르는 사람,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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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6-06-01
내용

우리는 매일 먹지만, 정작 무엇을 왜 맛있게 느끼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은 바로 그 간극을 메우는 사람이다. 

이마트, 초록마을 등 다양한 유통 현장을 31년간 누비며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을 직접 겪어온 그는, 

그 긴 시간의 끝에 식재료를 고르는 자신만의 단단한 기준을 세웠다. 

가격보다 맛을, 산지보다 품종을, 유행보다 제철을 먼저 살피는 것.

그가 말하는 좋은 식재료란 겉모양이 반듯하고 흠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제때 자라 제때 수확되어 본연의 향을 오롯이 간직한 것이다. 

향으로 고르고 맛으로 기억하는 것, 

그것이 그가 제안하는 가장 정직한 밥상의 출발점이다.

글. 편집실






Q. 식재료 전문가로 활동하신 지 31년째라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먹는 것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보통 소비자나 바이어는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가격보다 맛을 더 우선에 두는 편이거든요. 닭이라면 단순히 닭이 아니라 어떤 품종인지, 어떤 환경에서 길러졌는지를 더 따져보게 되는 거죠. 

그런 고민이 쌓이면서 지금의 역할로 이어졌습니다. 흔히 마트 바이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데, 조금 더 확장된 개념입니다. 바이어가 이미 존재하는 상품을 선별하는 역할이라면, 저는 상품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관여해요. 특정 산지의 식재료를 보며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을까’, ‘지금 제철은 언제일까’, ‘품종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을까’를 고민하고 큐레이션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식재료를 보는 기준을 전달하게 돼요. 결국 생산과 소비 양쪽을 함께 이해하고 연결하는 역할인 셈이죠.


Q. 맛있는 식재료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품종과 제철, 이 두 가지예요. 

품종만 달라져도 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토종닭도 어떤 품종인지, 제주에서 키웠는지 안성에서 키웠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감자도 분질 감자냐 점질 감자냐에 따라 용도 자체가 달라져요. 같은 재료라도 품종을 알고 고르면 전혀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제철은 더욱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4월에 가장 맛이 좋은 과일은 제주 천혜향이나 진지향 같은 만감류인데, 실제 유통은 1월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철보다 이른 시기에 소비되면 식재료 본연의 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거든요. 제철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같은 식재료의 맛이 완전히 달라져요.


Q. 소비자들이 제철이나 식재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까요?

가장 흔한 오해가 고랭지 배추예요. 많은 분이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항상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그건 여름 한철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배추는 20도 이하에서 자라야 맛이 좋은데, 한여름에는 그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고랭지뿐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만 맞는 말이죠. 하지만 1년을 기준으로 보면 가장 맛있는 배추는 12월에 수확된 배추입니다.

고구마 역시 오해가 많아요. 대부분 제철을 가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가장 맛있는 시기는 12월입니다. 고구마는 수확 직후에 맛이 거의 나지 않는 상태거든요. 일정 기간 숙성을 거치면서 전분이 당으로 바뀌어야 단맛이 올라오는데, 최소 60일은 지나야 제대로 된 맛이 납니다. 그 시점이 바로 12월이죠. 밤도 마찬가지로 추석 무렵보다 12월에 가까워질수록 맛이 더 좋아집니다.

반대로 감자는 수확 직후가 가장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품질이 나빠지거든요. 감자는 바로 사서 먹는 것이 좋고, 고구마는 일정 기간 숙성된 뒤에 구매하는 것이 좋아요. 이 차이를 이해하고 계시면 식재료를 선택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Q. 소비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식재료를 골라야 할까요?

‘향’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실제로 양파와 사과를 코를 막고 먹으면 구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송이버섯과 새송이버섯의 차이, 트러플이 높은 가치를 지니는 이유도 결국 향에 있습니다. 형태는 비슷해도 향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식재료가 되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식재료를 ‘눈’으로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가 없고 모양이 반듯한 것을 좋은 식재료라고 생각하는 거죠.

외형과 맛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데도요. 제가 경향신문에 ‘버금 밥상’이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으뜸(최고)의 바로 아래를 의미하는 버금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도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흔히 ‘못난이 농산물’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사람에게는 외모로 ‘못났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농산물에는 쉽게 그런 표현을 붙여요. 하지만 농산물이 진짜로 못난 경우는 외형이 아니라 맛이 부족할 때예요. 식재료를 평가하는 기준도 외관이 아니라 맛과 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봄·여름철에 추천하는 제철 식재료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땅에서 자란 제철 채소가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거든요. 사람도 기온과 환경이 딱 맞으면 컨디션이 좋듯이, 식물도 마찬가지예요. 양액 재배가 아닌, 땅에서 제철에 자란 채소를 즐겨 드시는 게 가장 좋아요.


Q. 요즘은 특정 제철 식재료가 유행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세요?

최근 봄동처럼 특정 식재료가 주목받는 흐름이 있었는데, 저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하나의 식재료만 소비하는 데 그치기보다, 함께 먹는 방식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봄동이 맛있다면 그에 어울리는 밥과 양념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쌀이 있고, 동네마다 고추장 맛도 다르니까요. 같은 봄동이라도 어떤 쌀과 어떤 고추장을 곁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식재료를 유행처럼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식재료를 중심으로 지역 농식품을 함께 엮어내는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봄나물전’이 주목받았으면 합니다. 봄동이 유행한 핵심이 ‘간단함’이라면, 봄나물전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단순한 방식입니다. 나물에 밀가루와 소금만 있으면 되고, 달걀을 더해 기름에 부치기만 하면 됩니다. 기름에 부치면 웬만한 재료는 대부분 맛있어지니까요.


Q. 어릴 때부터 좋아해온 음식이 있으신가요?

수제비예요. 어렸을 때 온 가족이 칼국수를 먹는 날이면 어머니가 저만을 위해 수제비를 따로 끓여주셨거든요. 편식이라고 타박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제 취향을 존중해 주신 거죠. 덕분에 수제비가 평생 맛있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아이가 가려 먹으면 ‘편식’이라 하고, 어른이 가려 먹으면 ‘개인 취향’이라고 하잖아요. 사실은 같은 이야기인데 말이죠. 저는 딸아이에게도 억지로 먹이지 않습니다. 일단 한 번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다시는 권하지 않겠다고 먼저 말해요. 취향은 강요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어머니가 제 취향을 존중해 주신 덕분에 수제비가 제 소울푸드가 되었듯이 말이에요.


Q.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코는 눈보다 더 빠르다’고요. 음식을 눈으로만 고르면 인위적인 것에 속기 쉽지만, 향과 맛으로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취향과 식재료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재료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시계나 카메라를 살 때는 많은 시간을 들여 알아보면서도, 매일 내 몸에 들어가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고민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식재료가 토경인지 수경인지, 진짜 제철이 언제인지 정도만 알아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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