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앞에서 배운 것들
평생 농촌에 살아본 적 없던 이가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농촌으로 향하는 일은 단순한 거주지의 이동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익숙한 일상과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한 채,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과 생업의 현장으로 들어서는 과감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치과기공사였던 최고야 대표와 호텔 노무팀에서 근무하던 남편 도해밀 씨의 귀농의 시작 또한 그랬다.
“시아버지께서 귀촌하신 뒤에 작게 양봉을 시작하셨는데,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는 사고를 겪으셨어요. 어머니도 그 빈자리를 메우려다 같이 허리를 다치셨고요. 벌은 한순간도 방치할 수 없는 생물이라 저희 부부가 주말마다 내려가 돌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남편이 농업을 새롭게 보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남편이 먼저 청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어요.”
그렇게 2019년, 본격적인 귀농이 시작됐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수년간 수익은 바닥을 맴돌았고, 부부에게는 농업을 지속 가능한 생업으로 안착시키는 일이 가장 큰 과제로 남았다. 양봉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했던 탓에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오랜 경험에 의존한 감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겹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첫해에는 아카시아꽃이 냉해로 한순간에 져버리면서 꿀을 전혀 얻지 못 했고, 이듬해에는 꽃이 만개하자마자 우박이 쏟아져 한 해 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여름의 극심한 폭염과 습기, 겨울의 이례적인 이상 고온 현상은 꿀벌의 생태계마저 흔들었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인간의 노력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최고야 대표는 그 현실을 온몸으로 겪었다.
|포기 대신 답을 찾아 나서다
최고야 대표는 포기 대신 다른 길을 찾았다. 청주시 농업기술센터와 충청북도 농업기술원을 찾아다니며 하나씩 배워나갔고, 그 과정에서 눈을 돌린 것은 ‘가공’과 ‘체험’이었다.
“플리마켓처럼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면서, 시장 반응을 몸으로 익혔어요. 막상 가보니까 빵이나 떡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제일 잘 나가고, 그다음이 과일청 종류더라고요. 꿀은 한 번 사면 오래 먹으니까 자주 사게 되는 제품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매달 꾸준히 수익을 내려면 사람들이 더 자주 찾는 상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해밀당의 꿀을 활용한 과일청을 직접 만들어 플리마켓에 들고 나갔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제품의 맛과 완성도와는 별개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힘이 부족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시선’을 끄는 힘이었다. 양봉 과정에서 얻은 밀랍으로 만든 ‘밀랍초’가 그 해답이 됐다.
“밀랍초로 양초를 만들어서 매대를 꾸미니까 사람들이 멈춰 서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설명을 덧붙였어요. 그러자 자연스럽게 제품에도 관심을 갖고, 구매로 이어지더라고요.”
변화는 매대 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밀랍을 공예 재료로 활용해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하자 손님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사서 가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며 더 오래 머물렀다. 이 경험은 외부 기관 출강으로 이어졌고, 아이들에게는 생태의 신비를, 성인들에게는 밀랍의 따뜻한 질감을 전하며 해밀당의 체험은 학교와 기업 단체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됐다.
입소문을 타고 교육 의뢰가 늘어나자 최고야 대표는 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우리만의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생산과 교육, 그리고 해밀당의 철학을 온전히 담아낼 그릇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현재의 부지를 마련하며 지금의 해밀당을 완성했다. 양봉이 단순한 생산에 머무르지 않고 교육과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해밀당은 현장에서 증명해 냈다.
|체험으로 완성하는 농업의 또 다른 방식
단단한 물리적 기반이 마련되자, 해밀당의 체험 프로그램은 한층 깊어졌다. 초기에는 밀랍초 만들기에서 출발했지만, 향을 더한 타블렛, 다육 화분과 밀랍 꽃 만들기 등 손끝으로 완성하는 공예로 점차 확장되어 갔다. 여기에 양봉 기반을 더하면서, 체험의 방향도 자연스럽게 ‘생태’로 넓어졌다.
현재 해밀당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은 단연 ‘꿀벌 생태 체험’이다. 방충복을 갖춰 입고 직접 벌과 마주하는 이 시간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꿀벌의 정교한 생존 구조와 생태적 역할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벌집을 열어 묵직하게 숙성된 꿀을 직접 확인하고, 원심분리기를 돌려 꿀을 채취하는 과정까지 체험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다들 무서워하지만, 황금빛 꿀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보면 아이들이 금세 호기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한 발 다가오는 순간을 ‘용기’라고 생각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임명장을 건네주며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가루쌀을 활용한 ‘꿀 쌀피자 만들기’ 역시 해밀당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다. 피자를 만들기에 앞서 꿀벌의 생태적 역할과 최근 개체 수 감소 원인,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이어지는 피자 만들기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꿀벌과 농업의 가치를 손과 눈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된다. 해밀당의 체험은 그렇게 농업을 ‘경험’으로 풀어내며 사람과
자연을 잇는다.
동시에 양봉 역시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계절과 기후에 따라 벌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건강한 군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에 공을 들이며 생산의 기반을 단단히 다져가고 있다. 체험과 교육이 확장되는 지금도, 그 중심에는 여전히 ‘벌’이 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최고야 대표는 이제 더 큰 내일을 꿈꾼다. 벌들이 자연을 돌보듯, 해밀당이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돌보는 ‘치유의 안식처’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 작은 거점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