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가뭄에 늘어선 배급 줄…피란민만큼 많아진 기후난민들

추천
등록일
2022-10-20
내용
지난 11일(현지시간) 오전 7시 케냐 남동부 가리사현 북부의 다답 난민단지 내 이포캠프. 돌(30)은 빈 포대와 식용유 담을 통, 외발 수레 하나를 끌고 집을 나섰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서다.

10분 정도를 걸어 월드비전과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 공동 운영하는 식량배급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그렇게 줄이 길지 않아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3시간까지도 걸린다. 돌은 가족 구성원 수, 나이 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바코드 등이 찍힌 식량배급카드를 제시한 뒤 입장했다. 입구에서 2명이 쫓겨났는데 남의 카드를 가지고 오거나 배급일이 아닌데 찾아왔기 때문이다. 입장한 이후에도 월드비전의 바코드 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중복수령 여부를 확인받는다.

게시판에는 1인당 가져갈 수 있는 쌀과 콩, 식용유의 양이 적혀 있었다. 1인당 쌀은 6.51㎏, 콩은 1.86㎏, 식용유는 1.085ℓ, 영양실조 방지 보조식은 2개가 할당됐다. 성인이 한 달을 버티기엔 부족한 양이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성인 일일 최소 필요열량(2100㎉)의 80% 정도 수준으로 이마저도 3분기 들어 미국 정부의 특별지원금이 투입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1분기에는 성인 일일 필요열량의 60%, 2분기에는 50%만 지급됐다.

다답 난민단지 거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줄어든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이 컸다.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대거 발생하고 인도적 지원 수요가 늘면서 개별 지원사업에 투입되는 자본은 줄었다. 난민 대상 식량 배급을 지원하는 WFP도 다답 지역 지원사업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항구 봉쇄에 따른 물류 차질, 식량가격 상승으로 계획한 만큼 식량을 수급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줬다. 여기에 최근 기후변화가 심해진 탓에 새로 난민들이 대거 다답에 모여들면서 1인당 식량 배급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다답 난민단지는 고질적인 지역분쟁과 기후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식량위기 해결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돌은 네 식구가 먹을 쌀(26.4㎏)과 콩(7.44㎏), 식용유(4.34ℓ)를 수레에 싣고 날라줄 사람을 찾았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수레를 끌고 50실링(약 600원)을 받아갔다. 돌은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비싸서 수레와 짐꾼을 쓴다고 말했다.

돌은 그렇게 받아온 식량으로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요리를 했다. 불을 지핀 아궁이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와 양파, 토마토를 집어넣었다. 국자로 토마토를 으깨면서 중간중간 물과 각설탕을 넣고 끓였다. 물컵에 적신 안남미를 넣고 10분 정도 끓이면 소말리어로 비스텔라라고 부르는 요리가 완성된다. 들어간 재료가 부족해서인지 너무 묽어 한 끼 식사로는 충분치 않아 보였다.

소말리아 접경지대에 위치한 다답 난민단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시설 중 한 곳으로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유입된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돌도 당시 전쟁통을 피해 고향인 소말리아 남부 도시 키스마요를 떠나 250㎞ 넘게 떨어진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 2006년 같은 소말리아 난민인 남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이곳에선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며 난민단지를 떠나 소말리아로 돌아갔다. 일용직으로 일해 번 돈을 매달 보내주긴 하지만 많아야 50달러로 네 식구를 먹여살리기에는 늘 부족하다.

남수단에서 넘어왔다는 14세 소녀 냐보대 추알댕도 내전을 피해 다답에 왔다. 냐보대는 파가크라는 마을에서 살았고 오크라, 옥수수가 많이 났으며 어른들이 도정하는 모습이 기억난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2013년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다른 지역에서 경찰로 일하는 아빠를 보러 간 사이 집주변에서 총성이 들렸고, 같이 있던 사촌들과 함께 무작정 집을 떠났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교회 지도자를 만났고, 다답 난민단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믿고 케냐로 함께 들어왔다. 그렇게 피란 4년 만인 2017년 다답 난민단지에 들어왔고 지금은 이포캠프에서 남수단 난민 양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분쟁을 피해 난민단지에 들어와 장기 거주하는 사람도 많다. 소말리아에서 유목민으로 살던 사하라 하산(47)은 25년 전인 1997년 다답 난민단지에 정착해 손녀까지 식구 10명이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소말리아에는 평화가 없었지만 이곳에는 평화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며 생계유지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난민들은 난민단지 밖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각종 기구가 지원하는 식량과 현금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보니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막내아들 압질카디르(6)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중증급성영양실조 진단을 받았다. 사하라도 당시에 하루 한 끼 정도 먹던 때라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오랜 기간 당뇨를 앓던 남편까지 떠나고, 이혼한 딸 식구까지 거둬들이게 되면서 끼니 걱정은 더 커졌다.

최근에는 오랜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들어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난민 4만6000명이 새로 다답에 정착했는데, 지난 9월19일부터 22일까지 사흘 동안에만 9000명이 망명신청을 했다. 망명신청자 대부분이 기후위기 난민일 것으로 월드비전과 WFP는 보고 있다.

지난 7일 다답 난민단지에 들어온 아흐메드 이스마일(73) 가족은 소말리아 북서부 케냐 접경지대 돌로 마을 일대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다. 하지만 최근 2년간 극심한 가뭄에 기르던 소 30마리와 염소 200마리를 모두 잃게 되면서 이주를 결심했다. 평생 유목민으로 살았고 2011년 대가뭄도 이겨낸 아흐메드에게도 이번 가뭄은 버티기 힘들었다. 그는 “예전에는 한 해 가뭄이 들면 다음해에는 조금이라도 비가 왔다”면서 “최근 4년간은 아예 비가 내리지 않아 가축들이 다 죽었다”고 말했다. 돌로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상황이 낫다고 들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많은 가축을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아흐메드는 다답에 가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을 잃은 며느리 술다나 하산(32) 가족까지 여덟 식구를 이끌고 난민단지로 왔다. 눈이 보이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데다 며느리도 임신한 상태라 이동이 쉽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으로 돌로에서 수프 지역을 지나 케냐의 만데라 지역을 거쳐 다답까지 도착하는 데 5일이 걸렸다. 아흐메드는 자신의 신체장애와 어린아이들이 많은 상황 등을 운전자들에게 설명했고, 세 운전자 모두 흔쾌히 도와줬다. 난민 등록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머물 거처도 난민단지 내 다른 주민들이 내준 덕분에 구할 수 있었다. 아흐메드의 큰손녀 압시라 압둘라히(12)는 가족들하고만 붙어 지내며 사는 유목민 생활을 탈출한 것에 기뻐했다. 며느리 술다나는 압시라를 학교에 보내겠냐고 묻자 “나중에 자기 앞가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찬성했다.

다만 둘째아들 사할 아흐메드(28)는 “예전에는 가축이 있어서 우리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가축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제는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경향신문 성동훈 기자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210192146005

첨부파일

댓글쓰기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