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우러지는 조화의 맛 : 한식의 미각을 깨우는 ‘양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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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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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은 음식 맛을 돋우기 위한 조미료 또는 향신료로, 식품 고유의 맛과 향으로 음식에 풍미를 더해준다.
우리나라 음식은 양념이 발전되어 같은 식재료로도 어떤 양념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낸다.
요리의 한계를 없애고, 맛의 다채로움을 경험하게 하는 우리 양념에 대해 알아본다.
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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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2021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KFOOD』, 행복이가득한집 편집부, 디자인하우스, 2021.
『양념공식 요리법』, 신미혜, 그리고책, 2021.
『양념은 약이다』, 박찬영, 국일미디어, 2010.조화로움 속에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우리 양념
한식의 기본은 섞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밥 위에 여러가지 나물, 고기, 달걀 등을 얹고 섞은 ‘한 그릇 음식’이다. 서로 다른 맛과 향이 한데 어우러진 맛의 교향곡이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융합되는 맛의 교향곡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양념’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양념인 된장, 간장, 고추장은 한식의 근간을 이루며 오랜 시간 한국인의 식문화를 이끌어왔다. 우리 양념인 ‘장(醬)’은 시간의 결실이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말린 후 제 맛이 들기까지 수개월, 혹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맑은 날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볕을 쬐어주고, 흐린 날에는 뚜껑을 닫아 비를 피하며 삭힌다. 자연 속에서 오래 기다리고 삭힌 장은 그 시간만큼 깊은 맛을 품는다. 간장, 된장, 고추장과 함께 맛깔난 음식맛을 내는 비결은 갖가지 양념 채소에 있다. 파, 마늘, 깨, 생강 등의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채소들은 제각각 특유의 맛과 향을 갖고 있지만 함께 어우러지면 제 3의 맛을 창조해낸다. ‘갖은 양념’이란 여러 가지 재료의 맛과 색이 잘 섞여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조화로움 속에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이 우리 양념이 가진 특별함이다. 어떤 식품에도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씨간장’으로 맛과 풍미를 유지하는
간장
간장은 여러 음식에 다양하게 쓰이는 가장 기본적인 양념이다. 간장이라는 이름 자체가 ‘간을 맞추는 용도로 만든 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간장은 잘 띄운 메주에 소금물, 고추, 숯 등을 넣어 항아리에서 숙성시킨 양념이다. 여기에서 메줏덩어리만 건져 으깬 것이 된장이다. 간장은 발효 기간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데, 새로 담근 간장은 햇간장, 1~2년가량 숙성된 간장은 청간장, 3~4년가량 숙성된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숙성시킨 간장을 진간장이라고 부른다. 진간장 중에 풍미가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두었다가, 햇간장을 만들 때 부어서 기존 간장 맛과 향을 유지해 이어오곤 했는데, 이를 ‘씨간장’ 이라고 부른다. 간장 맛의 씨앗이 되는 ‘씨간장’은 짠맛에 부드러운 단맛을 내 은은하고도 풍부한 맛을 낸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찬 메뉴로 한우 갈비구이가 올라왔는데 이 갈비구이 양념에 사용된 것이 360년 된 ‘씨간장’이었다.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은 이 ‘씨간장’이 미국의 역사보다 오래된 간장이라며 보도했다. 이처럼 ‘씨간장’이 수백 년을 이어올 수 있던 이유는 우리 고유의 ‘덧장’ 문화 덕분이다. 장독대에 있는 간장은 요리에 사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매년 새로 담은 햇간장을 조금씩 더해 ‘씨간장’의 맛과 풍미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덧장 문화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로 꼽힌다. 유사한 장문화를 가진 중국과 일본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종류가 많고 쓰임새가 다양한
된장
간장과 함께 하나의 항아리에서 만들어지는 된장 또한 한식의 근간이 되는 양념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된장은 일반 된장, 메줏덩이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한 후에 간장을 빼고 남은 부산물인 막된장, 메줏가루와 소금물을 넣고 두세 달 삭혀서 간장을 떠내지 않고 만드는 토장, 빠갠 메줏덩이에 볶은 콩가루, 전분, 소금 등을 넣은 막장, 메줏가루에 소금물과 가지, 오이 등의 채소를 넣어 일주일가량 숙성시켜 물기가 많은 즙장, 그리고 메줏가루에 온수를 붓고 고춧가루, 생강, 소금 등을 넣어 일주일 삭힌 담북장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메주를 빻아 김칫국물을 넣어 익힌 지레장, 콩비지로 만든 비지장, 삶은 팥과 통을 섞어 담그는 팥장뿐만 아니라 지역별 특색이 담긴 된장들도 수십 여 가지가 있으니 맛 또한 각양각색이다.
된장은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쓰임새 역시 무궁무진하다. 나물을 무치거나 국을 끓이고 여러 가지 반찬에 구수한 맛을 낸다. 뿐만 아니라 누린내와 비린내를 없애주는 향신료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세계에 우리 양념을 대표하는
고추장
간장, 된장과 함께 빼 놓을 수 없는 우리의 전통장은 고추장이다. 고추장은 메줏가루에 고춧가루, 찹쌀가루, 엿기름 등을 섞어 푹 익혀서 맛을 낸 양념이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간장, 된장과 달리 고추장은 고추가 수입된 이후부터 담가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에서 1749년에 영조가 고추장을 언급하기 이전까지 고추장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18세기 무렵에야 조선의 밥상에 처음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식을 대표하는 양념인 고추장의 역사가 300년도 채 되지 않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빼놓고 우리 음식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음식의 대부분에 양념으로 사용된다. 「2021 가공식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한국인이 고추장을 사용해 자주 하는 음식은 제육볶음이 22.6%, 떡볶이가 17%로 두 번째를 차지하며 한국의 매운맛을 대표하는 음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해외에서도 우리 고추장의 인기가 높아 2021년 고추장 수출량은 22,986톤으로 역대 최대의 수출실적을 기록하였다. 미국에서는 고추장의 시장성에 주목해 기업들이 고추장의 단맛을 강화한 제품이나 바비큐용으로 쓸 수 있는 고추장 소스 등을 자체 개발하여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 양념을 대표하는 고추장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맛의 한 끗 차이를 내는
양념 채소
간장, 된장, 고추장 외에도 우리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은 여럿이다. 그 중 파, 마늘, 깨, 생강 등은 맛의 한 끗 차이를 담당하는 재료다. ‘파’는 알싸한 매운맛과 특유의 향기로 음식의 풍미를 살려주는 향신 채소다. 가열하면 단맛이 나고 요리에 깊고 시원한 맛을 낸다. 파는 뿌리, 줄기, 잎 부분이 모두 요리에 따라 다르게 활용되어 제 역할을 하는 만능 채소다.
특유의 매운맛을 내는 또 하나의 양념 채소는 ‘마늘’이다. 한식의 대부분의 요리에 들어가는 마늘은 생 요리, 익힌 요리 모두에 다용도로 쓰이는데, ‘감칠맛’은 바로 마늘의 쓰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마늘은 자극이 강해서 채소의 풋내를 제거하고, 육류나 생선의 이취를 없애주는 향신제로 쓰이기도 한다.
참깨, 들깨는 요리의 마지막을 향긋하게 채우는 식품이다. 볶아서 통깨 그대로 고명으로 사용하면 요리의 모양새를 좋게 만들고, 참기름, 들기름으로 짜서 나물을 무치거나, 완성된 요리에 약간만 둘러 주면 산뜻하고
고소한 향으로 풍미를 더해준다.
이밖에도 한식의 맛을 내는 양념은 채소와 과일을 가리지 않는다. 자연의 무엇이든 음식에 담으려 했던 조상들의 지혜로움과 새로운 맛을 찾아 음식을 조리하고 정성껏 차려내는 식문화가 한식의 바탕이 된 이유다.한국 고유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양념, 한국을 넘어 세계로
고추장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듯 우리 양념은 전통의 맛과 과거에만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발전하고 있다. 지난 2020년 4월 출시되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시장인 아마존에서 10위권을 지키고 있는 ‘김치 시즈닝’이 대표적인 예다. 김치 시즈닝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를 외국인의 스타일에 맞는 양념으로 재해석해 분말 형태로 만든 것이다. 한국에서 음식으로 먹는 김치를 가루로 만든다는 것이 생소하지만, 외국인들은 피자나 파스타 등 음식에 시즈닝을 해 먹는 것이 익숙하다. 전통의 맛과 과거에만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발전한 우리 양념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우리 양념의 근간이 되는 ‘장 담그기’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장 관련 기관이나 단체가 ‘장 담그기’ 문화 교육 프로그램과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 담그기 문화 프로그램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장 문화 프로그램 개체 단체 14개소를 통해 3년 간 1,800여 명이 장 담그기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이뿐만 아니라 유치원 및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장 담그기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해 미래 세대들이 어린 시절부터 우리 양념의 근간인 전통 장의 중요성을 알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지난 3월 30일에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하기 위한 신청서를 유네스코 사무국에 제출했다. 등재 결과는 유네스코 사무국의 심사를 거쳐 2024년 말에 결정된다고 한다.
조화와 화합의 한식 문화의 근간이 되는 우리 장 문화를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매력적이고 독특한 맛으로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는 우리 양념이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기대한다.
한식의 맛을 내는 양념 비법
비법1
양념 넣는 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양념은 같은 재료라고 해도 어떤 순서로 넣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소금의 입자는 설탕 입자보다 작아 음식에 먼저 배어듦으로 소금을 뿌린 후에 설탕을 뿌리면 설탕이 잘 배어들 수가 없다. 또한, 식초는 공기 중 잘 날아가기 때문에 일찍 넣으면 향이 금방 사라진다. 오래 익히지 않는 나물이나 고기에는 소금을 가장 먼저 넣은 뒤 설탕을 넣고 참기름을 맨 마지막에 넣는다. 또 향이 없는 것에서 향이 강한 순으로 넣어주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설탕 -> 소금 -> 식초 -> 간장 -> 된장 -> 고추장의 순서를 기억해 두면 편리하다.
비법2
양념의 배합 비율을 지킨다
요리할 때 양념의 분량은 식품 재료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각 양념과의 상호 관계에서 배합 비율을 측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늘은 생강의 6배, 파는 마늘의 2배, 깨소금은 참기름의 2배 비율로 넣는다. 식재료 자체의 향을 즐기고자 할 때는 마늘, 파, 생강 등의 양념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넣지 않기도 한다.
비법3
요리에 따라 양념의 활용이 다르다
음식 맛을 ‘손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양념의 활용능력과 다르지 않다. 한식의 주요 밑반찬인 나물은 양념할 때 손바닥으로 눌러 가며 속까지 양념이 배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살짝 양념만 섞이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생마늘을 써서 매운 맛이 강하면 볶아서 익혀서 사용하고, 간이 다 된 다음에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둘러 식재료와 양념의 맛을 조화롭게 한다. 또 생채 요리에는 식초, 설탕, 겨자 등을 넣어 맛을 한결 돋우게 한다. 생선이나 육류 요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 음식의 맛을 해치는 비린내, 누린내는 향이 강한 양념 재료를 사용하면 고기 고유의 맛은 살리면서 불쾌한 냄새를 없애 더욱 식감 좋은 요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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