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에서 찾은 농업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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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3-11-22
내용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한 정미소에서 갓 도정한 ‘김포금쌀’이 쏟아져 나옵니다.
벼를 ‘심고’, 쌀을 ‘짓고’, 농업의 가치를 ‘빚으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 나가는 농부.
쌀 한 톨에 담은 의지로 창의적 농업의 꿈을 펼쳐 나가는 ‘벼꽃농부’의 정성채 대표를 만났습니다.




3대를 잇는 농부가 되다

경기도 김포의 최북단, 민통선이 인접한 마을 깊숙한 곳에는 주변 농촌 경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황금빛 논 사이로 난 좁은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잘 정돈된 푸른 잔디가 가장 먼저 시선을 끌고, 그 뒤로는 흰색과 검은색의 단아함이 돋보이는 현대적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지요. 이곳은 커피 한 잔과 함께 다양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농촌 복합문화공간 ‘벼꽃농부’입니다. 구석구석 정성채 대표의 철학과 생각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정성채 대표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농사를 한 농부입니다. 할아버지 대에 원래 고향이었던 김포 양천 지역에서 지금의 하성면으로 들어왔고, 아버지가 5,000여 평 부지에서 농사를 시작했어요.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정성채 대표는 농사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따라 우연히 인삼밭을 간 것이 농업에 뜻을 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김포 땅 외에도 전라도 고창 지역의 땅을 임대해서 인삼 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평당 500원이면 살 수 있는 땅을 임대료 450원을 주면서 농사를 하신 것을 알게 됐어요.

50원 차이 나는 땅을 임대료를 꼬박 내가며 손해를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죠.

계속 손해를 보게 될까 봐 직접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농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눈길을 돌린 것은 바로 쌀이었습니다. 김포 지역은 철분이 풍부한 토양과 함께 해풍까지 겸비해 예로부터 품질 좋은 쌀을 재배할 수 있었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벼농사를 지어온 경험이 있어 큰 두려움도 없었어요.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동네 방앗간을 드나들며 보고 들었던 경험들이 벼농사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중학생 때 집에서 농사지은 쌀을 방아 찧으려 심부름을 자주 했어요.

그때 쌀을 제값에 팔지 못하고 심지어는 쌀을 팔고도 돈을 못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어요.

그래서 내가 만든 쌀은 내가 직접 팔아야겠다 다짐하게 되었죠.

그런데 막상 벼농사를 짓고 직접 팔려고 하니, 쌀이 좋지 않으면 못 팔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쌀의 품질을 올리고 차별화하는 데 집중했어요.”




맛있는 쌀의 가치를 전하기 위한 농부의 진심

본격적으로 벼농사에 뛰어든 정 대표는 벼 품종 선택과 비료 관리, 저장과 숙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쌀을 재배하는 농가의 쌀을 매수하여 품종에 관해 공부하고, 계약재배 농가의 토양과 비료도 체계적으로 관리해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한 것이죠. 특히 밥맛을 좌우하는 건조와 저장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저온의 환경에 장시간 자연 건조하는 ‘숙성 건조’ 방식을 채택해 도정 후에도 쌀이 수분과 윤기를 머금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고의 노력 끝에 3년이 지난 후에는 최상의 품질을 가진 쌀을 생산할 수 있었고,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1991년에는 한 해 겨울에만 2,500가마의 쌀을 팔 정도로 활황을 맞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다수확 벼 품종 재배가 대부분이었어요.

생산량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가장 중요한 밥맛은 떨어지죠.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처럼, 밥을 먹을 때도 맛이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밥맛이 일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쌀을 혼합해 먹는 블렌딩 쌀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성공한 쌀 농부로서 처음 목표했던 바를 이미 이룬 그였지만, 정 대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쌀이 가진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죠. 마침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에서 강사 활동을 하던 시절, 유럽의 여러 농가를 체험한 기억이 있던 정 대표는 당시의 좋았던 경험을 되살려 이곳 벼꽃농부를 기획했어요.


성공한 쌀 농부로서 처음 목표했던 바를 이미 이룬 그였지만, 정 대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쌀이 가진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죠. 마침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에서 강사 활동을 하던 시절, 유럽의 여러 농가를 체험한 기억이 있던 정 대표는 당시의 좋았던 경험을 되살려 이곳 벼꽃농부를 기획했어요.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벼꽃농부

벼꽃농부를 찾는 고객들에게 정성채 대표가 가장 전하고 싶은 가치는 ‘힐링’이에요. 벼꽃농부 기획의 신조가 되었던 유럽 농가의 힐링하우스처럼,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벼꽃농부에서 진행하는 모든 활동도 힐링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힘들게 농사하고 탈곡 체험을 하는 육체적인 활동 대신에, 농장에서 재배한 재료로 만든 음료와 음식을 즐기며 책을 읽고, 쾌적하게 조성된 체험 공간에서 케이크, 쿠키, 꿀떡 등을 만들며 노는 것이죠.


“돌아보면 모든 게 쌀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더 큰 보람을 느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쌀을 접하고,

익숙함에 가려져서 몰랐던 쌀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건 덤이죠.”

요즘 정성채 대표는 새로운 쌀 가공식품 연구와 함께 벼꽃농부를 더 풍요롭게 가꾸는 데 푹 빠져있습니다. 최근에는 4대를 잇는 아들 정찬희 씨와 함께 체험 프로그램만을 위한 전용 공간을 조성하고, 신제품 개발을 위한 최첨단 시설까지 들여왔어요. 과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타고난 농부답습니다.


한 톨의 쌀은 하나의 꽃에서 난다고 합니다. 벼가 자랄 때 작은 꽃을 피우고, 그 꽃 하나가 피고 지며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이 되는 것이죠. 이때 피는 벼꽃은 순식간에 지고 말지만, 좋은 꽃이 피어야 좋은 쌀이 나기에 농부는 이 모든 과정을 잘 살펴야 해요. 이처럼 벼꽃농부라는 이름에는 쌀알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벼가 자라는 전 과정을 보듬고 책임지는 농부가 되겠다는 정성채 대표의 굳은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수십 년 세월, 한결같은 마음으로 쌀을 통해 그가 보여준 진심처럼, 먼 훗날 벼꽃농부는 사람을 보듬고 먹거리의 가치를 높이는 공간으로 거듭나 있을 겁니다.




 차주익 사진 박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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