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밭’에서 불법 폐기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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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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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경기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한 마을. 초록빛 논밭 사이에 낮고 거대한 회색빛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3956㎡(약 1200평)에 걸친 이 ‘회색 지대(地帶)’에 가까이 가 흙을 파보니 폐비닐, 폐포대, 폐고무, 폐플라스틱, 폐타일, 도자기 파편, 폐목재, 폐유리, 못 조각 등 각종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 위에 회색 흙을 덮어놓아 위장한 셈이다. 이 ‘쓰레기 언덕’은 작년까지 채소를 심었던 밭이다. 지난 2월 한 토사 업체에서 “무상으로 좋은 흙을 줄 수 있다”면서 농민들을 속인 뒤 흙이 아니라 산업 폐기물을 갖다 버린 것이다. 농민들은 “밤새 트럭이 왔다 갔다 하길래 성토(盛土) 작업을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2019년 2월 ‘의성 쓰레기산’ 사태 이후 환경부가 이 같은 쓰레기 대량 불법 투기(投棄) 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성 쓰레기산’은 경북 의성군 단밀면 야산에 한 업체가 20만t이 넘는 각종 폐기물을 쌓아두면서 인근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끼친 사건을 가리킨다. 미 CNN 방송에까지 등장하면서 화제가 되자 정부와 지자체가 1년 8개월에 걸쳐 282억원을 투입해 지난 2월 겨우 다 치웠다. 그런데 그 뒤로도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이번 환경부 조사 결과다. ‘의성 쓰레기산’ 이후에도 지난달까지 2년 6개월간 전국에서 이 같은 대규모 불법 폐기물 더미가 70만7000t 새로 적발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경북(20만6571t), 경기(11만3506t), 충남(10만5702t), 전남(8만6019t) 순으로 많았고, 시·군·구별로는 경북 영천(5만5709t), 전남 순천(4만3668t), 경북 의성(3만5443t)·경주(3만216t), 경기 평택(3만1263t) 순이었다. 주변에 공장이 많거나 인적이 드물어 폐쇄회로(CC)TV가 많지 않은 산지·농지 밀집 지역이 더 심했다.


불법 폐기물 규모 자체는 2020년 45만6422t에서 작년 19만4463t, 올해는 8월까지 6만1771t으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적발이 안 된 것일 뿐 실제 불법 폐기물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주로 산업 폐기물인 불법 폐기물은 생활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공 처리 시설에서는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민간 소각·매립장에서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불법 폐기물 규모가 줄고 있다면 민간 소각·매립장 처리량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 수치는 2019년 163만8109t에서 2020년 164만7164t으로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조사에 누락된 ‘은둔 폐기물’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불법 쓰레기산’ 사태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는 느슨한 법 규정이 자주 지적된다. 현행법상 불법 폐기물 투기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그친다. 그런데 이 폐기물을 민간 소각·매립장에서 처리하려면 t당 10만~15만원이 든다. 폐기물 처리가 필요한 곳 입장에선 폐기 물량이 200~300t을 넘어가면 일단 몰래 버린 후, 안 걸리면 좋고, 걸려도 벌금을 내는 게 큰 부담은 아닌 셈이다. 적발되면 물론 불법 폐기물을 다시 처리해야 할 의무가 생기지만 이 또한 나 몰라라 버티거나 처리 업체와 갖다 버린 배송 업체가 다른 경우가 많아 책임 공방 와중에 절차가 하염없이 지연되곤 한다.


실제 ‘의성 쓰레기산’ 사태 때도 정부 예산 282억원이 들었지만 폐기물 업체에서 이 돈을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성 쓰레기산’ 이후 적발한 70만t 중 지금까지 39.6만t(56%)이 적절하게 처리(매립·소각)됐을 뿐 나머지 30만t이 아직 쌓여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요즘은 단속을 피해 쓰레기를 작게 나눠 버리는 ‘소분(小分) 불법 투기’도 성행하고 있다.


환경부는 2019년 이후 작년까지 불법 폐기물을 대신 처리하는 예산으로 국고 816억원을 투입했고, 올해도 연말까지 58억원을 쓸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매년 불법 폐기물 의심 사업장을 선정해 점검·순찰을 하고 있다”며 “폐기물 운반용으로 등록된 전 차량에 GPS를 부착하고 운반 전후 폐기물 무게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등 추가 대책도 곧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transport-environment/2022/09/29/FXARYZOS4BGQ3AFNWYJ5PQAXNU/?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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