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헤어질 결심’ 요즘 축제들 “일회용품 안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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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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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쓰레기가 쓰레기통을 넘쳐 바닥에 나뒹구는 것만 봤는데… 일회용품만 사라져도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네요.”


?경기도 화성에 사는 박소연(27)씨는 지난 5월20일부터 22일까지 3년 만에 열린 ‘수원연극축제’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3년 전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먹거리 구역에서 일회용품이 완전히 사라졌다. 관람객들은 다회용기에 담긴 음식을 받아 식사한 뒤 지정 공간에 반납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려 모든 식당이 비건피자와 같은 채식 메뉴를 구비했다는 축제 관계자 설명도 신선했다. 안내책자에도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 친환경 종이로 제작됐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박씨는 “축제장 곳곳에 설치된 쓰레기통이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온갖 축제를 다녀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축제, 환경을 만나다…“즐기는 축제 그 이상 필요”
코로나19 이후 축제에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수원연극축제’도 그중 하나다. 수원문화재단은 이번 축제에서 처음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축제’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축제도 기후위기 등 생태 문제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반성을 담았다고 한다.


재단은 먼저 축제장을 종이컵과 플라스틱 컵, 빨대 등 일회용품이 없는 친환경 구역으로 만들었다. 무대도 새로 설치하지 않고 원래 있던 공간을 그대로 활용했으며 경관조명과 불꽃도 이전 축제보다 크게 줄였다. 축제 홍보 안내판은 폐목재를 재활용했고, 펼침막은 ‘새활용’(upcycle·재활용품에 디자인이나 활용도를 더해 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했다.


공연과 전시, 체험 행사도 친환경에 초점을 맞췄다. ‘다 함께 막거나, 다 같이 죽거나’ 등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담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가로수 가지치기 뒤 버려진 잔가지를 활용한 설치미술 작품도 만들었다. 경기도 업사이클플라자와 협업해 우유팩과 플라스틱 쓰레기, 자투리 가죽 등을 새활용하는 체험 행사도 마련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번 축제에 배출된 종량제·음식물 쓰레기는 2019년에 견줘 1만1500ℓ나 줄었다. 탄소감축량으로 환산하면 897.44㎏CO₂e다. 박수정 수원문화재단 예술창작팀 대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일회용품 사용 금지 등 불편함을 전면에 내세웠는데도 목표(18만명)를 넘어선 19만명이 축제장을 찾았다. ‘흥행과 환경’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뿌듯해했다.


지난 6월10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의정부음악극축제’도 친환경 축제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의정부문화재단은 예술감독 1인 체제에서 벗어나 ‘환경예술감독’과 ‘지속가능성감독’까지 위촉하는 등 준비 단계부터 환경에 신경을 썼다. 안내책자를 예년에 견줘 절반만 만들고, 펼침막 등 옥외 광고물도 사탕수수로 만든 직물을 사용했다. 축제를 일주일 앞둔 6월3일에는 모든 직원이 참여해 친환경 실천 선언식도 했다.


공연도 색달랐다. 개막 공연은 국내 1호 환경퍼포먼스 그룹으로 꼽히는 ‘유상통프로젝트’와 폐품 재활용 악기를 쓰는 ‘시민 정크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해양쓰레기 증가를 무중력 퍼포먼스로 표현한 작품 등이 뒤이어 무대에 올랐다. 손경식 의정부문화재단 대표는 “즐기는 축제에 그쳐선 안 된다. 환경에 피해를 덜 주면서도 마음껏 즐기는,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축제 모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역 축제도 친환경 시동
친환경에 시동 건 지역 축제는 수도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11월 열린 ‘강릉커피축제’는 ‘일회용품 전면 사용 금지’란 강수를 둬 쓰레기 배출을 예년의 10분의 1로 줄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준비해 온 텀블러나 머그잔으로, 미처 준비 못 한 이들은 주최 쪽이 마련한 다회용 컵을 빌려 축제를 즐겼다. 지난해 5월부터 계절에 맞춰 순차적으로 진행된 춘천마임축제도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펼침막과 포스터, 안내책자 등 일회용 홍보물은 아예 제작하지 않았다. 축제장 약도 등에 사용된 펼침막도 다른 곳에서 쓰고 버린 것을 가져와 뒷면에 그렸다. 이 펼침막들도 다음 축제 때 재사용하거나, 에코백과 앞치마 등으로 만들어 재활용하기로 했다. 대신 축제장 곳곳에 안내 문구를 담은 모니터나 정보무늬(QR코드) 등을 설치해 축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춘천 하중도 생태공원에서 열린 ‘다시, 숲’ 축제도 환경과 공연예술을 접목한 행사다. 축제 참가자들의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차장을 따로 두지 않고 남춘천역과 춘천역에서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행했다. 자전거와 카누 등 무동력 교통수단을 이용해 중도를 찾은 방문객에게는 특별 기념품을 줬다. 같은 기간 강원도 원주종합체육관 일대에서 열린 ‘원주 다이내믹댄싱카니발’은 홍보물 최소화에 주력했다. 예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펼침막을 제작했으며, ‘축제, 환경과 만나다’를 주제로 시민과 함께 환경운동 챌린지 ‘줍깅’(걷기+쓰레기 줍기)도 펼쳤다. 안내책자도 재생용지를 사용했다. 지난 6월 진행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도 쓰레기 최소화를 위해 종이팩 생수와 종이 배너, 재활용 가능한 방수 재질의 펼침막 등을 사용했다.


지난해 10월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서 열린 ‘비빔밥축제’는 비빔밥을 뻥튀기 그릇에 담아 나눠줘 주목을 받았다. 참가자들이 비빔밥을 먹은 뒤 뻥튀기 그릇을 후식 삼아 먹게 돼 예전처럼 일회용기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김성군 전주시 관광산업과장은 “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말자는 ‘제로 웨이스트’를 지역 음식축제에 접목해봤다. 작은 분야에서부터 동참하자는 의미로 시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뻥튀기로 인해 과거 향수도 느끼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친환경 축제 제도화해야”
친환경 축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적 노력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충남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2019년 11월 ‘환경축제 개최를 위한 축제 먹거리 1회용품 감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충남도에 제안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다회용 그릇 사용을 위한 축제장 상하수도 시설 설치 △텀블러 사용 유도를 위한 음수대 설치 △일회용 비닐봉지 무상 제공 금지 △행사 관계자 사전 환경교육 이수 △일회용품 감축 방안 마련과 평가지표 적용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도 이미 2018년 9월 공공 주관 행사의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서울’ 종합계획을 발표했으며, 지난해 7월에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조례’까지 제정했다. 정부도 지난해 7월 국무총리 훈령으로 ‘공공기관 1회용품 등 사용 줄이기 실천 지침’을 마련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2018년 서울시가 종합계획을 세워 축제장 일회용품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허용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이제라도 조례나 정부 지침 등이 생겨 다행이지만, 강제력이 없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역 축제 대부분이 지자체의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예산 지원 평가 항목에 ‘일회용품 사용 금지’ 등을 의무화하는 등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인선 경희사이버대 대학원 겸임교수(전 서울혁신센터장)는 “지금까지의 축제는 흥청망청 소비와 엄청난 쓰레기 등 환경 파괴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찮았다. 탄소중립과 그린뉴딜 시대 축제만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는 축제도 환경을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한겨레 박수혁, 박임근 기자

* 기사, 썸네일이미지 출처: https://www.hani.co.kr/arti/area/gangwon/10534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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