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밀면, 속초 오징어순대 ‘6·25 푸드’는 어떻게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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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06-25
링크URL
https://news.joins.com/article/23809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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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흥남서 피난 온 ‘동춘면옥’ 주인?
메밀 못 구해 밀가루 쓴 게 처음

오징어 순대, 함경도 출신의 지혜
미군부대 남은 뼈가 돼지국밥 재료



“어느 날 아침 밥솥에 불을 때고 있었는데 미군 부대가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그 통역관이 말하기를 지금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니 빨리 떠나라는 것이었다.

난리통에 아침밥이 미처 뜸도 돌기 전에

뜨거운 밥솥을 그냥 싸서 들고 감골재를 향해 급히 자리를 떠났다.” (황창기, 당시 17세)


“이곳(밀양 초동초등학교에 마련된 수용소)은 배급을 주지만 적게 주어

배급으로는 견딜 수가 없어 밥을 얻으러 나갔다. 바가지를 들고 남의 집을 가니 조금씩 주었다.

밥을 얻으러 온 사람은 줄이 이어졌다. 방앗간에 가서 등겨를 쓸어 담아와

굶주린 배를 채우거나 산에 가서 산도라지도 캐어 먹고 생멸치도 얻어먹었다.” (신용찬, 당시 13세)


이는 경남 창녕문화원에서 만든 『창녕이 겪은 6.25전쟁』의 내용 일부다.

창녕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문화원은 원천콘텐츠 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6·25 전쟁

구술담을 듣거나 수기를 받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전투 중심으로 알려진 6·25 전쟁과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보완 자료 역할을 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전격적인 기습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전투에 투입된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삶도 송두리째 뒤바꿨다. 준비도 못 한 채 떠밀리듯 피난길에 오른 이들은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환경에 놓였다. 특히 곤란한 것은 식량 문제였다.
 
황해도에서 전남 진도까지 피난을 간 강영봉(당시 19세)씨는 “전쟁을 피해 진도에 들어왔지만,

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으려 해도 흉년이 들어 줄 밥이 없는 상태였다.

배급으로 받은 옥수숫가루는 겨우 허기나 잊을 만큼이었다…공사판 일과 숯 굽는 일을 하였는데

 받은 품삯으로 쌀을 사다 먹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서숙쌀(조)이라는 것을 사다가 죽을 끓여 먹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피난민들은 조달 가능한 재료를 통해 새 음식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잔반들은 유용한 재료가 됐다.
 
“그들(미군)이 버린 잔반을 가져다 끓여 먹었으며 감자껍데기 삶아 버리는 것도 가져다 먹었다.

가루우유를 먹다가 코가 막혀 혼이 나기도 하고, 솥에 쪄주면 우둑우둑 깨물어 먹기도 했다. (김희준, 강원도 인제군 당시 12세)”
 
이렇게 만들어진 대표적 음식 중 하나가 부산 돼지국밥이다.

부산에 온 피난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뼈를 이용해 탕국을 만들어 먹으며 시작됐다.

돼지국밥 골목이 형성된 부산 서면시장 옆엔 미군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구호물자로 보낸 밀가루는 ‘6·25 푸드’의 바탕이 됐다.

부산 밀면은 함경남도 흥남시에서 냉면집 ‘동춘면옥’을 하던 정한금씨가 1·4 후퇴로 피난촌에서

‘내호냉면’이라는 음식점을 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전쟁으로 메밀을 구하기 어렵자 밀가루에 전분을 넣어 쫄깃한 면발을 만든 것이다.

당시엔 ‘경상도 냉면’이라 불렀다고 한다.


부산의 비빔당면, 대구의 납작만두, 진주의 소다칡빵도 공급량이 많은 밀가루와 지역의 토속 재료를 섞어 만든 퓨전 요리다.

강원도 속초의 명물 오징어순대는 함경도에서 온 피난민들이 명태순대 대신 속초에서 구하기 쉬운 오징어로 대체한 먹거리다.



 
이같은 내용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지역N문화’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측은 “실제로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회고는 6·25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는 소중한 원천 역사 자료”라며 “이렇게 발굴된 원천콘텐츠가 영화, 소설, 연극 등으로 활용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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